맥 2023.봄 - 창간호

괜찮다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은 너와 나, 우리가 안고 사는 우울. 그리고 그 감정이 가져온 마음의 병 우울증. 화제의 채널



□ 창간사



다시, 왜, 『맥』인가?



‘코로나19’ 시대는 내게는 새로운 시련의 연대였다. 2021년 8월, 급격한 호흡곤란으로 청구병원을 거쳐 명지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음압병동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



청구병원, 젊은 의사는 “사망할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 했다. 명지병원 응급실, 육중한 체구를 가진 남자 간호사는 링거액을 연결하고 소변줄을 끼우면서 낮은 음성으로 살아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위로의 말이었지만, 고유량 산소호흡기에 숨을 맡기고 닷새 동안 렘데시비르를 맞고서 세상 이쪽 편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천행이었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얇은 유리막 하나가 전부였다.

병원 3층 중환자실의 넓은 유리창 바깥으로 살아 움직이는 저쪽 편 세상이 건너다보였다. 작가 이상의 거울 속처럼 소리가 없는 저 세계는 내가 누워 있는 세상과는 다른 저편에 있었다. ‘코로나19’는 나로 하여금 이 세속 세상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세속의 일들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지만 그 삶은 바다 위에 떠다니는 목선들과도 같다.



‘anno-covid19’.

우리는 새로운 ‘연대’에 들어서 있다.

이 연대는 삶과 죽음 사이의 유리막을 더욱 얇게 압착시킨다.

죽음은 바야흐로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것은 어디서든지 돌연 우리들 세속적 삶의 리듬을 끊고, 부지불식간에, 간단없이, 우리들 삶에 틈입해 들어온다. 삶과 죽음 사이의 ‘씬 레드라인’(thin redline)을 의식하며 우리는 모든 문제를 다시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중요하고 관건적이었던 것들이 더 이상은 그 지위를 누리지 못할 수 있다.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것, 어느 편이냐 하는 것, 무엇이 올바른가 하는 것……

작가 이청준은 한밤중에 얼굴에 환한 전짓불을 들이대고 어느 편이냐는 질문 앞에 직면했던 유년 시절의 공포의 기억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썼다.



그리하여,

세속적 삶의 열정에 물든 우리들의 정신을 되돌아보자고 생각한다.

질문을, 탐구를, 대화를 삶 자체의 문제를 향해 되돌리자고 생각한다.

계급 간, 성별 간, 세대 간의 투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우리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보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탐색해 보자고 생각한다.

정치가, ‘정치적 올바름’이 족쇄가 되어 스스로를 ‘검열’하는 수인의 상태에서 벗어나, 문학적 언어의 창조력과 생명력을 되찾자고, 실험과 도전의 자유를 돌려받자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들 사람이, 생명이 선 자리를 되돌아보고, 그 문명적 상태를 새롭게 진단하고, 새로운 삶의 상태를 꿈꾸어 보자고, 설계해 보자고 생각한다.



잡지의 제호 ‘맥’은 김남천의 소설 「맥麥」에 나오는 화가 고흐의 말에서 빌렸다.

고흐는 사람의 삶은 보리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갈려서 배고픈 사람의 배를 채워줄 빵이 될 수도 있고, 땅에 떨어져 덧없이 썩어갈 수도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내일을 위해 흙 속에 묻히는 순명을 따를 수도 있다.

일단 제호를 ‘맥(麥)’이라고 하자 더 많은 한자들이 이 ‘맥’에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그렇게 삶의 맥(脈)을 이어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 저 옛날 사람들이 상당했던 것처럼 나쁜 꿈들을 살라버릴 수 있어야 하며(貘), 한국어라는 언어적 종의 생명력을 이어가야 한다(貊)



2023년 2월 28일

발행인 겸 편집인 방민호



1. 발간 취지



가. ‘anno-covid19’. 새로운 ‘연대’의 새로운 잡지가 필요하다.



죽음이 바야흐로 삶의 일부가 된 시대다. 질병. 그리고 전쟁. 죽음이 간단없이 우리들 삶에 틈입해 들어온 시대. 삶과 죽음 사이의 ‘씬 레드라인’(thin redline)을 의식하며, 우리는 모든 문제를 다시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 투쟁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는 우리들 사회, 우리들 삶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계급 간, 성별 간, 세대 간의 투쟁과 갈등으로 얼룩져 있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보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탐색해야 한다.

정치가, ‘정치적 올바름’이 족쇄가 되어 스스로를 ‘검열’하는 수인의 상태에서 벗어나, 문학적 언어의 창조력과 생명력을 되찾자고, 실험과 도전의 자유를 돌려받아야 한다.



다. 한국어, 한국어 문학의 생존과 존속, 그 미래를 위해 노력을 기하고자 한다.



인구 절벽이 우리 앞에 현실화하고 있다. 인구의 감소 추세 속에서 한국어, 한국어 문학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세계 공용어로서 영어의 국제화, 세계화 추세, 이웃해 있는 중국과 일본의 언어적, 문학적 힘은 한국어와 한국어 문학의 새로운 분발을 요구한다. 때마침 ‘K-문학’이 세계의 관심대상으로 부각되고 있는 지금 그 활력을 새롭게 북돋울 필요가 있다.



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는 사상적, 문학적 지혜를 모으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한다.



노동해방, 여성해방, 소수자 해방의 뒤를 이어 바야흐로 사회 개혁, 세계 진실서 구축, 이름하여 ‘개벽’,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지금 『맥』은 인간 해방의 유토피아니즘을 지향하는 모든 사상적, 문학적 조류들과 힙을 합쳐 우리들의 삶과 문학을 새롭게 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갈 것이다.



마. 문학적 소수자들, 빛이 들지 않는 노력의 문학인들, 가능성들을 지원하고자 한다.



문학의 힘은 펜의 힘이다. 권력적 지형과 질서에 구애되지 않고 한국어 문학의 참된 가능성을 보여주는 모든 문학인들, 탈북작가와 같은 문학적 소수자들, 자본의 힘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문학 메커니즘 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가능성의 문학인들을 적극 발굴하고 지원하고자 한다. 새로운 문학적 역량을 발굴하고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



2. 편집인 및 편집위원



가. 편집인 겸 편집위원 방민호



문학평론가. 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효석문학재단 이사장. 『이광수 문학의 심층적 독해』, 『문학사의 비평적 탐구』 등의 저서.



나. 편집위원 이성혁



문학평론가. 한국 외국어대 강사. 『이상 시문학의 미적 근대성과 한국 근대문학의 자장들』, 『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등의 저서.



3. 창간호 특징



가. 한국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력 있는 작가들



비트코인 시대에 살아남기

신주희 단편소설 「작은 방주들」



제1회 채만식문학상 수상작가

심아진 단편소설 「안녕, 우리」



전업 작가 남한의 야심찬 미래소설

재화의 희소성을 소멸시킬 무한 복제 기계가 나타났다. 빈부격차와 노동은 과연 소멸할 것인가?

『무한복제기계』 1부



나. 시인들



청록파 박두진 시인의 계승자 신대철 시인, 『사월』 동인인 김명철, 박현수, 김선향 시인, 수덕사 현 주지로 계신 승려 시인 박금성(도신 스님) 등, 그리고 구한말 의병장 이강녕 기념사업을 하고 있는 이순희 시인, 『붉은 산 검은 피』를 새로 펴낸 오봉옥 시인 등, 그리고 강신애, 육근상, 김명철, 문동만, 이승규, 김학중, 우혁, 최지인 등의 신작시 26편



다. 북한 탈북 작가들의 산문을 수록



대표적인 탈북작가인 이지명,

도명학 작가의 고향 이야기 두 편. 탈북작가들의 문학을 지속적으로 수록해 나갈 것이다.



라 다양한 비평



기존의 비평 담론 지형과는 위상과 각도를 달리하는 비평문들을 수록해 나갈 것이다.

창간호에는 임지연, 방민호, 이성혁 등의 비평을 수록하고 있다.